벽화마을 이후 5년,  

주 수암골은 어떻게 달라졌나?





우후죽순. 비온 후 대나무가 자라나듯, 그렇게 쉽게도 마을에 벽화가 그려진다. 


지역을 막론하고, 마을을 가꾸고 마을을 만들고 마을을 재창조하는 모든 일이 벽화로 시작된다

서울 이화동마을, 통영 동피랑, 부산 감천마을은 벽화마을의 교과서같은 곳이 되었다. 

부산만 해도 여러곳에, 대구, 태백, 군포, 수원, 천안 등 전국의 신상 벽화마을은, 연이어 매스컴에 등장하고 블로거가 인터넷에 소개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다. 


몇 군데가 조명을 받으니 비슷비슷한 벽화마을이 등장한다. 주거정비지역이나 외딴 농촌마을에 활력을 줄 목적으로 공공미술의 하나로 시작된 마을 벽화 프로젝트가 맥락없이 사용되고 눈요기 사업으로 전락한다. 

제발 벽화를 그리지 말아달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낙후된 마을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질문해볼까?  사람들은 왜 벽화마을을 찾아갈까? 

과연 그림 때문일까? 




내가 찾은 해답은, 골목이다. 


벽화마을에는 벽화가 아니라 골목이 있기 때문에 가는 거다. 




대단지 아파트가 세워진 지가 높은 지역이나 반듯반듯한 신도시 주거타운의 대로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경사를 따라 꼬불거리고 올록볼록한 그 골목을 걸으러 가는 거다. 골목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까 말까한 폭의, 집과 집 사이에 난 길이다. 


골목은 점점 좁아져서 대문으로 인도하거나, 집과 집 사이의 틈을 작은 호흡으로 메워준다. 골목은 좁은 집과 마당의 확장이기도 하다. 내 유년의 골목도 그러했다. 골목 한켠에 돗자리를 펴거나 의자나 평상을 놓아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날 좋을 때는 빨갛게 고추를 말리고 나물을 말리던 골목의 풍경들.



골목은 담이 튀어나오거나 집이 앉혀진 모양에 따라 꼬불거리기 마련이다. 그런 골목을 거닐면 집들이 살아있는 것 같다. 모두 똑같은 집이 아니라, 모두 다른 집으로서. 집집마다 삶의 모습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해도, 지붕색이 다르고, 창문 모양이 다르듯이 성격이 다르고 개성이 다른, 그런 삶들이 아른거린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많이 사라져버린 것이 골목이리라. 골목은 허물어지고 합쳐져 넓고 쭉 빠진 도로로 바뀌었다. 오래된 집들은 되살릴 수 있으나 한번 바뀌어버린 길은 되살리기 어렵다. 

 

 

 


 

사실, 그림 따윈 없어도 좋았다. 골목만 살아있다면.

 

 

그렇다면, 벽화는, 공공미술은, 이런 마을에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봄이 더디 오던 3월 무렵, 잡지의 의뢰로 청주 수암골을 돌아보았다. 


수암골은, 빵을 만드는 소년이 등장했던 드라마를 촬영한 마을로 잘 알려져있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청주에 있는 화가 부부로부터 수암골이라는 마을에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한지 5년이 흐른 후, 마을은 어떻게 변화했는 지가 궁금했고, 또 한편, 수암골은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가진 마을이었나,가 더 궁금해졌다.  


또한, 지인이 귀뜸해준 이야기-2008년에 진행된 벽화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자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을일에 관여하고 있다는-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문화 기획자 이광진 씨의 전화번호를 들고, 청주 수암골로 갔다. 




수암골은 우암산 기슭에 전쟁피란민들이 모여살던 달동네에서 시작되었다. 재건시대, 청주를 먹여살린 강인한 노동력을 제공해온 수암골 주민들은 자식들을 모두 번듯하게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이제 나이든 부모들가 되어 자신들만큼이나 오래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마을은 도시 안에 편입되어 있으나, 전통마을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장철이면 집 앞마다 배추가 쌓이고, 장 담그는 날이면 축제라도 열린 듯 마을이 떠들썩하다. 정월대보름이면 돼지를 잡고 풍물을 울리며 지신밟기 행사를 벌인다.

 

 


서서히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오자 청주의 역사를 한켠을 증언하는 이 마을은 풍전등화, 속수무책이었다. 이광진씨는 이 마을의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마을의 역사를 일깨우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벽화와 사진전을 추진했다. 벽화 프로젝트에는 30여 명의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바람, 주민들의 꿈, 주민들의 이름, 주민들의 현재 모습이 벽에 그려졌다. 




벽화 프로젝트는 그림만 그린다고 모든 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후 관리가 더욱 중요했고, 벽화를 통해 마을이 좀더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연결해야 했다. 특히, 수암골은 오래된 집들이며 빈 집이 많아 툭하면 담이 허물어진다. 그림이 찟겨 나가는 셈이다. 


매년 새롭게 정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어린이들의 체험학습 장소로도 이용되고 벽화 그려보기 등의 활동으로 마을에 활력이 생기기도 했다. 수암골 사람들은 담을 개인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듯했다. 마을 공동의 캔버스로 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예술가들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였지만, 점차 시민들이 참여하는 형태가 되었다.


 

후에, 주민들은 원치 않았으나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졌고 관광객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그동안 흐지부지하던 재개발 사업도 재개되어 마을 절반이 허물어졌다. 벽화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이사를 나갔다. 수암골 주변으로 카페도 생기고 게스트하우스 공사도 허가가 떨어졌다. 청주 시내의 전통적으로 유명한 국수집과 빵집이 들어와 관광객의 휴식처가 되었다. 관광객은 많아졌지만 수암골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기획자는 뜻있는 주민들과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일을 도모하기로 마음 먹었다. 

 

 

마을 공동체 협의체인 '마실'을 운영하면서 수암골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식당 겸 주막인 '밥상'을 열었고 주민들이 손수 만든 기념품들도 판매한다. 기념품은 벽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캐릭터로 활용했다. 안내지도를 자발적으로 나눠주고, 텃밭을 일구며, 빈 가내수공업 공장은 도서관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 등이 수암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을에 벽화가 그려진 후,

수암골은 두 가지 변화가 공존한다.

 

 



첫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고층 건물과 카페, 레스토랑이 생겨나고 차랑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가 넓어지는 등 마을 구조에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둘째, 마을의 규모가 툭 하고 절반으로 잘려지고 말았으나, 벽화로 인해 용기를 얻은 주민들이 공동체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면 새로 찾아드는 사람도 생겨나는 법이다. 빈 집에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온 예술가들이 둥지를 튼다. 이 동네가 좋아서 왔다는 젊은 공예인들의 공방이 오래된 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조금씩 수암골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그 편에 살짝 줄서보았다. 




나는 그날의 기록에 '다정한 골목'이라는 말을 썼다. 나를 바깥으로 내몰지 않고 감싸주는 담과 골목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세드신 주민분들이 관람객을 따뜻하게 맞아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마도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다정한 듯하다. 골목은 사람들이 사는 집들로 이루어지고 그들의 발걸음과 그들의 웃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예술이 촉발시킨 마을의 변화는, 그 외형에 있지 않다. 사람들의 삶에 깃들인 공동체 정신과 링크되는 데서, 공공예술이 가치를 가진다. 나는 수많은 벽화마을 프로젝트에 그것을 질문하고 싶다. 벽화가, 그들의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청주 수암골



원래 동네 이름은 수동이며, 주민들은 15통 사람들이라 불렀단다. 그런데, 도로명으로 지번이 바뀌면서 골목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골목에, 수동의 '수'자와 우암산의 '암'자를 따서 수암골목이라 이름을 붙였다. 수암골이라는 이름은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골목에서 파생된, 이 마을의 별칭이다. 보통은 마을이름에서 골목 이름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마을 이름은 또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므로 수암골은 골목이 주인인 마을이다.




수암골 주민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문패였다. 부부의 이름을 모두 쓴 문패들이 많았다. 




정교한 지도는 아니지만 골목의 주요 벽화들을 표시한 지도도 그려져있다. 

수암골에서 담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의 캔버스다.




오래된 마을일수록 담이 쉽게 무너지고 부스러진다. 그래서, 벽화 사후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매년 덧칠하고 더 그려야 흉물이 되지 않는다. 뉴스보도로는 벽화 사후관리로 프로젝트의 3%의 비용을 떼어놓아야 

한다고 하던데, 3%로 과연 사후관리가 될까? 이 빠진 아이 벽화는 원래 아이가 1명이었는데, 

담이 허물어져 한 아이를 더 그려야 했었다고 이광진씨가 전했다, 누군가 와서 몰래 그려놓기도 한다고. 

또, 자발적 참여자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국수와 막걸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 겸 주막 '밥상'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마실이라 새겨진 몇 가지 기념품도 만들어판다. 





























Posted by sweet-workroom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