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시절, 1930년대, 우리 국민들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조각가 진규는 어린 시절 카메라를 갖고 놀았을 정도니까요. 영화는 두말 할 것도 없겠지요. 현실에 좌절하고 또 미래를 희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활동사진 속에서 펼쳐졌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근대를 읽어내는 대부분의 시각자료는 이방인의 시선에 담긴 것들이 많습니다. 아시아를 기행하고 돌아간 탐험가들이나 저널리스트, 화가 혹은 작가의 눈에 비친 코리아의 풍경과 풍습이 그림으로, 사진으로, 때로는 필름으로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지금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들은 중국이나 일본, 인도차이나 반도와 다른 모습을 가진 코리아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식민지 치하에서 억압받는 국민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료들이 있습니다
. 일본인이 만든 코리아의 모습입니다. 총독부의 지시로 만들어진 관광 홍보 엽서와 홍보 영화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반도 전역에 철도망이 설치되고 부산항에서 경성을 지나 평양, 신의주를 넘어 만주까지 대륙 열차가 이어지자 관광객은 급증했습니다. 일본인 관광객의 숫자도 컸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관광객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홍보책자와 기념품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서울 중심부의 모습

조선인촌 풍경

남산에 세워진 일본신사

창경궁 대온실 내부



멋쟁이 도시, 현대 건물들이 들어선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경성, 부산, 평양, 제물포 등 큰 도시의 관광포인트를 콕콕 집어내어 기념엽서를 만들었습니다. 종이함에 들어있는 엽서세트는 좋은 기념품이었지요. 이 엽서는 거꾸로 현재 우리들로 하여금 당시의 풍경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 엽서 속에는, 영화 속에는, 소설과 그림 속에는 사람의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될뿐더러, 다시 한번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거짓말은 아닙니다. 상황의 한 단편이라는 것이죠. 퍼즐 한 조각처럼 말이지요. 한 조각은 전체의 그림을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미지는 위험합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오류는 피해야 하는 것이지요.

 


서울역사박물관과 청계천문화관에서 근대의 시선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


먼저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리는 
<이방인의 순간포착, 1930년 경성>를 보고 왔습니다. 철도, 관광, 관공서, 도시 풍경 등 모던 시대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념엽서와 기념품, 지도들로 꾸며진 제1전시실과 1930년대 종로와 을지로의 주요 가로변의 건물군을 분석, 재구성하여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볼 수 있는 제2전시실로 꾸며졌습니다.




1930년대 경성의 랜드마크였던 건물들을 입체전시물로 표현했다.



현재 종로타워 자리에 있던 화신백화점. 백화점에서 사용하던 쿠폰과 매상표.


 

경성 관광 자료들. 철도가 도시를 연결하여 부산에서 만주까지 이어지자 국제적 관광이 이루어졌다.



경성시가지. 지금은 사라지 많은 건물들.


1930년대 종로 시가지를 분석했다.

반대편 벽은 을지로 시가지다. 일본이름이 많이 보인다.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3D 모형으로 재현했다.


종로와 을지로. 장군의 아들 김두환과 하야시로 대표할 수 있는 조선인과 일본인 거리입니다. 을지로는 진고개라 불리던 지역으로 남산 언저리와 함께 일본인 거주촌으로 성장한 곳입니다. 한일합병 이후 일본인 거류지는 경성을 대표하는 거리로 정책적으로 육성되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을 밝히며 문명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속속 지어져 은행, 전화국, 학교, 백화점, 그리고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게 세워졌습니다. 지금의 을지로, 명동, 충무로에 이르는 거리는 일본인들이 가득했던 것이지요.



1930년대 경성 번화가 가로변 건물들.




종로는 전통적인 조선인 촌락이었습니다. 위로는 궁궐과 북촌 양반들의 가옥이 펼쳐졌고 전통상점가가 이어졌지요. 한일합병 이후 종로는 발전의 혜택을 보지 못했고 을지로와 비교되어 조선의 낙후성을 증명하는 장소로 남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토박이상권과 일본의 상권이 부딪히는 지점이자 서로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1930년대의 종로와 을지로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전시물은 1939년에 찍은 <경성>이라는 흑백 문화영화입니다. 시미즈 히로시라는 영화감독이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의뢰로 만든 홍보영화입니다.  24분짜리 영상물은 발전하는 경성의 풍경을 구석구석 담아놓았습니다.  코트를 입고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흰색 보닛을 쓰고 운동하는 초등학생, 경성제국대학과 제국대학 병원, 지금의 명동극장인 명치좌.............바쁘고 힘찬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합니다. 어두운 밤에도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도 보이는군요. 학교에는 풀장도 있습니다.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장면이 삽입되지 않았다면 전쟁 중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을 것 같군요.

이런 풍경을 다양한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지만 경성의 밝은 면을 극대화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문화적 혜택을 골고루 느릴 수 없음은 당연하며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 화면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또한 이방의 시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1901, 체코인 브라즈의 서울 방문>이라는 작은 전시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개항기 때, 유럽의 여러 나라와 작지만 분명한 교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흥미롭습니다. 그때 그들과 우리는 어떤 것들이 서로 궁금했을까요?




전시물 중에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체코에서 발행된 한국 관련 서적들이 있습니다. 체코 문학에 한국인 인물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카렐 흐로우차가 있고, 바르보라 마르케타 엘리아쇼바라는 여성작가는 1933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젊은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과 <순애와 기태>라는 청소년소설을 남겼습니다. 1949년에는 알로이스 풀트르가 한국어 사전을 발행했다고 합니다.

1925
년에 카렐 차페크(홍차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반가운 이름이군요!!!)라는 작가의 로섬의 만능로봇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카렐 차페크는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에도 여러 번 거론된 적이 있다고 하네요.

동아일보가 초청하여 1928년 서울에서 강연회를 가진 보후밀 포스피쉴이란 인물이 있군요. 동아일보 행사는 조선 청년들에 유럽 강국에 휘둘리던 체코인이 결국 독립을 쟁취한 역사적 과정을 배우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인데, 혹한의 추운 날, 유료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의 호응이 높았다고 하는군요.

 

 

 

 

 

전시장 풍경. 맞은 편 전시장에 브라즈가 올 당시의 서울 풍경을 재미나게 구성한 영상물이 상영중이다.

 

 

 

 

 

 


엔리케 스탄코 브라즈는 체코에서 출생한 사진가겸 여행가입니다. 1901년 4월 27 제물포로 들어와 3개월 간 서울과 근교를 구경하고 부산을 통해 다른 나라로 떠났답니다. 라틴아메리카, 태평양 군도, 인도지역 등 이국적인 풍물을 찾아 떠나온 보헤미안의 후손이었지요. 브라즈는 책을 써서 코리아와 서울의 풍경을 소개했습니다. 덕수궁으로 정궁을 옮긴 뒤 폐허가 된 경복궁의 곳곳도 찍었고 사대문 주변의 거리의 풍경, 이화학당의 선교사들이 여학생을 가르치는 모습, 일반 사가의 내부도 담았습니다.


이분이 바로 엔리케 스탠코 브라즈. 카메라 들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진정한 보헤미안.




왠지 정치가삘이 나는 브라즈.


스테레오스코프라는 입체 사진 카메라입니다. 입체사진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데, 옛날 풍경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신기하더군요.



 





브라즈의 뷰파인더에 잡힌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하게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거리에 전봇대가 세워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한옥도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개량 한옥에서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는 북촌의 양반도 있고, 이화학당의 공부방은 긴 여닫이 문이 큼직하게 달려서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도록 했군요. 브라즈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자연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다녀간 5, 6월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때지요. 옛날 사진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어보았습니다.

 


옛날 사진들을 보면, 저절로 그 시절이 궁금해집니다. 옛날 사람들이 먹던 빙수 맛은 어떠했을까요? 수로와 하수구를 만들고 사용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전깃불이 환하게 밝혀졌을 때, 밤이 낮처럼 밝아졌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과 다른 백년 전 풍경을 보노라면 모든 것이 낯설고 희한합니다.





때론 상상조차도 어려운 시절이지요. 그래서 흥미로운 점도 많지만요. 이방인의 시선에 잡힌 호기심 가득한 사진을 보면서 그들 이상의 호기심을 느끼는 지금의 우리야말로 이방인이 아닐까요?

옛 시대를 찾아
, 옛 집을 찾아, 옛 사람의 흔적을 찾아 다닐 때마다 저는 늘 이방의 여행자가 되곤 합니다.





 

 


전시보러 가셔야죠? 무료 관람입니다.

 

 


1901년 체코인 브라즈의 서울방문

414~6 12

서울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www.museum.seoul.kr



** 5
11홍순민(명지대) 교수의 설명회가 있군요. 문의-02-724-0180

 



이방인의 순간포착, 1930 경성

3 29~ 6 26


청계천문화관 기획전시실

www.cgcm.go.kr 문의 국번없이 120

 



더 읽어볼 책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어린이 책으로 분류되어 있네요.
쉽고 재밌다는 이야기겠죠?

 



서울은 어떻게 계획되는가

염규복

살림지식총서 중에 경성시가지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된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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