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에 대한 기억은 언제부터일까? 


어렸을 적의 기억이 조각조각 단편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몇몇의 장소를 꽤나 의미심장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장소들은 어디일까? 답을 찾기는 어렵다. 부모님이나 친적들에게 들어보면 나와 관련된 일들은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 엄마의 반복된 증언으로는, 시장에서 나는 자주 사라졌다는 것이다.


젊디젊은 엄마는 젖먹이 아들을 등에 업고, 말도 하고 걷기도 하는 나이의 딸(나)을 손으로 이끌며 시장을 나가곤 했다. 한참 시장 아줌마들과 흥정하고 돌아서면 뒤에 있어야 할 어린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이름을 외쳐부르며 골목을 다니다, 포기하고 파출소에 가면 그 딸이 거기서 울고 있단다. 한 손에는 오뎅 꼬치를 들고서.



"그게 어느 시장이야?" 

마흔이 된 딸이 물어본다.


"서부시장. 대구에서 큰 시장이라. 

아를 못찾아서 서비산 로타리에 있는 파출소에 신고하러 갔는데, 

문 밖에서도 바가지 깨지는 울음소리가 들리더마."

엄마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대구 서부시장은 1971년에 문을 열었고, '한 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꼽혔단다. 어쩌면 나는 서부시장에서 길을 잃고서 엉뚱한 방향으로 살아갔을 수도 있었던 것인가? 그 시절에는 시장에서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자주 잃고서 길바닥에서 울고는 했다. 하지만, 조금 기다리면 엄마가 아이를 찾아냈고, 노점에서 콩국물이나 오뎅 등을 먹으며 잠시 동안이지만 버려졌다는 서러움을 꿀껏 삼키곤 했다. 


그러므로 오뎅은 서러움 덩어리였다. 콩국물은 채 마르지 않아 눈썹에 맺힌 눈물과 함께 삼키는 짭쪼름한 그런 것이었다. 종이인형과 장난감, 먹음직한 과자와 눈깔 사탕. 그런 것들을 보고서도 갖지 못해 울고, 울다보면 또 서러워져 계속 울던 아이들. 시장은 서러움의 장소이고, 매번 좌절하면서도 엄마가 시장에 갈 때면 또다시 따라나서는 욕망의 장소였다. 나는 시장 가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시장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심장이 쿵쿵거린다. 




시장하면, 부산에 살때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 나는 엄마를 따라서 오시게 시장이나 온천시장, 부전시장, 동래시장을 자주 갔다. 크고 유명한 시장이었다. 오시게 시장은 오일장이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물건 파는 사람과 물건 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홉살 쯤 우리집에 오게 된 강아지 '복실이'도 오시게 시장 출신이었다. 검은 비닐 봉투에 고구마처럼 담겨온 조그만 강아지를 품에 안던 날, 그 뭉클했던 감정이 지금도 기억 어딘가에 있다. 복실이는 4년 후 바깥에서 놀다가 다른 집에서 풀어놓은 쥐약을 먹고 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고서는 오시게 시장도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니 그때도 2일, 7일 열렸던 오시게 시장이 지금도 그 날짜 그대로 열린다고 한다. 태광산업 앞 장전동에서 열렸던 그 시장은 지금은 노포동 쪽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변함없이 전통장이 열린단다. 



시장의 운명은 그런 것인가 보다

다니던 시장이 없어지면 그렇게 안타깝고 불편한 것. 

설렘을 주는 장소를 하나 잃어버린 아쉬움.





박경리 선생의 소설 <시장과 전장>에는 해방공간의 개성 부근 연안이라 불리는 마을에서 교편을 잡은 지영이 시장을 헤매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삼팔선 부근 마을에서 지영은 무엇을 찾으려했을까? 남편과 두 아이, 모두 서울에 두고서 혼자 가족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가족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멀고 위험한 곳으로 온 것이다. 지영을 위로해주는 장소는 시장이었다.  



시장은 축제같이 찬란한 빛이 출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기쁜 음악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동화의 나라로 데리고 가는 페르시아의 시장-그곳이 아니라도 어느 나라, 어느 곳, 어느 때, 시장이면 그런 음악은 다 있다. 그 즐거운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가. 그곳에서는 모두 웃는다. 더러는 싸움이 벌어지지만 장을 거두어버리면 붉은 불빛이 내려앉는 목로점에서 화해 술을 마시느라고 떠들썩, 술상을 두들기며 흥겨워하고. 대천지 원수가 되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오다가다 만난 정이 도리어 두터워지는 뜨내기 장사치들. 

물감 장수 옆에 책을 펴놓고 창호지에 담배를 마는 사주쟁이 노인도 서편에 해가 남아있는 동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온갖 인생, 넘쳐 흐르는, 변함없는 생화이 이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지영은 이곳이 좋고, 혼자 거니는 외로움이 좋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좋았다. 시장의 음악과 시장의 얼굴들은 어린 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향한 곳도 없는 그림움과 어린 날의 아품이 바람처럼 지영의 가슴을 친다. 

....(중략).....


지영이 처음 연안에 왔을 때도 이 시장 길을 지나갔다. 낯선 도시, 낯선 거리, 그리고 낯선 사람들, 이 시장 길을 지나갈 때 지영은 안심하고 기쁨을 느꼈다. 


  

                        ------<시장과 전장> 박경리, 나남출판, 2008(초판발행 1964년)

































목척시장은 대전에 있다. 일제강점기 주택을 개조한 카페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이름이 목척시장이었다. 목척교 주변이라 시장 이름도 목척시장이다. 


목척시장은 이미 사라진 시장이다. 


재래시장이 퇴락하게 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장이 사라지고 오래된 집터만 남은 것은 아마도 재개발 때문이리라. 퇴락한 도시 특유의 오래된 냄새가 풍긴다. 닦아지지 않은 세월의 먼지도 느껴진다. 좁은 골목 사이로 촘촘하게 마주보고 있는 문과 창, 다양한 형태의 상점들이 여전히 시장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그 시절, 이곳은 얼마나 시끌벅적 요란스러웠을까? 아웅다웅 흥정하면서도 손에 한가득 채소와 생선을 들고 나오며 뜨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타박타박 걸으며 사라진 시장 속으로 들어간다. 

한낮의 태양은 쨍했지만 짙은 그림자가 골목에 드리웠다.  
























목척시장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옛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다. 



대전 본정 2정목에 원대전시장이 잇는 일면에 춘일정 2정목과 3정목 주민들이 출일정파출소 후면에 약 사백평가량의 공지에 미곡과 신탄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매매하게 된 목척시장이 일정한 시일도 없이 매일개시되어잇어서 부근 주민의 편이를 도하던바 지난이십삼일부터 대전서에서 시장규측 위반이라하야 이를 해산케하고 취체를 철저이하게 되엇다 이 토지는 김갑순 씨 소유로 장차 공설시장을 만들복안으로 무등서장당시에 무료제공하기로 하고 그와같이 비공식시장을 개시하게 된 것인모양인데 그후 신탁회사로 하여금 매월 7원의 지료를 상인들에게 증수하게 된 것이라 한다.(동아일보 1933년 11월 26일자)


그 후 시장 설치에 대한 건의각 쇄도하게 된다.


1936년 봄, 지역 구역장들과 기성회 간부들이 주축이 되어 목척교 부근에 목척시장을 설치하자는 건의를 대전부에 제출하게 되었는데,  3월 23일에 1600여명이 서명 날인하여 진정서를 넣게 되었다. 이들은 부청, 상공회의소, 경찰서 등으로부터 원조를 구해서 시장 설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는 것. 당시 본정 2정목에 있던 우시장은 영정으로 옮겨가는 일이 결정되어 있었다. 














대전 원도심의 주요 소매시장으로 성장했던 목척시장은 그 주변을 대규모로 재개발하려는 대형 건설사의 황금빛 미래상에 취해 조용히 바스라졌다. 총 9만4341m²(2만8538평)의 533필지 내에 53층의 호텔 및 오피스텔, 지하 7층 지상 60층의 아파트, 백화점, 영화관 등이 들어선다는 계획이었다. 


요즘 목척시장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젊은이들이 중고시장을 여는 장소로 유명하다.  대형건설사의 화려한 투시도가 아니라, 시장을 이용하고 도시를 애정하는 사람들의 작은 활동이 모여서 시장의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목척시장을 돌아보며 쓸쓸함을 덜 수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리라.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손길.










카페 안도르



일본식 목조 주택과 1930년대의 서양식 주택 형태가 섞인 오래된 건물이 카페로 변신했다. 대전부청의 관사촌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는 이 집의 구체적인 역사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건물도 거의 같은 구조의 주택을 입면만 개조하여 복합상가로 만든 것인데, 이 건물과 함께 연구해볼만 하겠다. 바깥의 거대한 향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다. 향나무를 심는 것은 일본식 전통이라고 들었다. 목척시장에 닷찌 플리마켓이 열리는 날이면, 카페 안도르도 동참하여 즐거운 장터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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