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기분이 울적해서 짬뽕이나 먹어볼까 하여 차를 움직였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꽤나 맛있는 짜장면집이 있지만 사람이란 자고로 가던 곳만 꼭 고집하는 버릇이 있기 마련이라
, 늘 가던 향원으로 향했지요. 향원은 차이나타운과는 조금 떨어진 신포시장 입구에 있습니다.

일요일 오후
, 신포동에는 거대한 나이트클럽이 어젯밤 과음을 호소하는 듯 거무스레한 몸집을 뒤틀고 있더군요. 거긴 늘 그렇지요. 항구 근처의 어수선한 분위기, 뱃사람들이나 뱃사람의 후예들이 하룻밤 놀다 갈 목적으로 들어가는 대형 클럽, 그리고 낡아서 손만 대면 먼지가 주룩 흐를 것 같은 오래된 건물들.


 

1924년에 지어진 인천우체국입니다. 이제 이런 건물을 보는 게 새롭게 느껴지는 거죠.




짬뽕과 탕수육을 기다리며 창 밖을 보니 오, 인천우체국이 보입니다. 인천이 본격적으로 항구로 개발되던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우체국은 배에서 내린 물건이나 배로 떠날 물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항구와 맞닿은 도로에 세워졌어요. 그리고 그 옆에는 인천세관과 해운상사들과 상업은행들이 군데군데 자리잡았었지요.

세관은 당시에는 '해관'으로 불렸어요. 인천해관은 검은 나무 격자와 뾰족한 탑 모양의 지붕을 가진 서양식 건물이었어요. 마치 독일이나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위기의 건물이 세워졌던 거지요. 9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독일풍 인천세관이나 은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우체국은 그때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있습니다 


인천세관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독일 어디쯤인 것 같기도 하고요.


뒤쪽엔 인천해관이 앞에는 오사카 상선회사가 있어요. 인천 우체국은 항구에 면해 있고 주변에 세관, 상선회사, 해운창고가 즐비한 곳이었죠.



걸쭉한 짬뽕 국물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체국이 더 진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이곳에 자주 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보러, 오래된 국물 맛을 보러, 오래된 이야기를 들으러, 오래된 길을 걸으러, 오래된 마음을 곱씹으러요.

거리에 온통 묻어있는 알쏭달쏭한 노스탤지어
. 이건 뭘까요? 인천은 그런 빛깔입니다.

 

 

잔뜩 부푼 위장을 쉬게 할 요량으로 차이나타운까지 어슬렁거려봅니다. 곧 눈발이 날릴 것 같은 흐린 날씨지만 다행히 찬 바람이 없어 걸을 만했지요.
길도 걷고 카메라로 툭툭 사진도 찍으면서
예전에 본 1930년대 지도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잘 다듬어진 격자 무늬의 거리가 개항장을 잘 나누고 있고, 해안에는 이미 항구시설이 다 정비가 되어 있었지요. 인천은 수심이 얕아서 큰 배가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었지요. 이곳에 갑문식 도크를 세워 물을 채운 후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뱃길을 만든 것이지요. 해안길에는 큼직큼직한 창고들이 가득합니다.


갑문식 도크가 세워진 인천 항의 모습


지겟군이 거대한 상선을 바라보고 있군요.


해안동 일대의 모습입니다. 이런 목조 건물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진 창고들도 많았죠.


인천 개항장 풍경. 집과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이 거리는 지금도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 길 모양 그대로 지번이 형성되었고 해안로 창고 건물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많아요. 낡고 우중충한 창고 건물은 나이트클럽이나 정비시설로 바뀌긴 했지만 그 분위기가 여전합니다.

눈에 띄는 대로 몇 컷 찍어보았습니다. 오래된 동네라는 느낌이 옵니다.





중구청을 향해 가는 길은 인천이 개항한 이래 일본인을 위한 구역이었고
,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한 이후에는 본정통으로 개발한 곳입니다. 본정(혼마치)는 일제강점기에 성장한 도시라면 한번씩 등장하는 도심의 이름이지요. 본정의 대부분이 중앙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꼬불거림 없이 쭉쭉 뻗는 길 양쪽으로 묵은 흔적이 역력한 건물들이 줄을 잇습니다. 안쪽 골목은 주택가와 상가, 해안과 가까운 쪽은 대형 창고들이 있죠.


인천항 부근을 지도로 본다면 이랬어요.1930년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옛 본정통, 일본인들이 목조주택을 짓고 살았던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봅니다. 중구청 근처까지 가면 백 년 된 은행건물들이 여전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일본 제1은행, 일본 제18은행, 일본 제58은행으로 불렸던 건물 세 채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서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은행 인가 번호가 바로 그 은행의 이름이 되곤 했는데, 1은행은 일본 중앙은행이며, 18은행은 나가사키 은행, 58은행은 오사카은행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인천에 세워진 은행 건물들입니다. 중앙에 세워진 것은 일본제일은행, 왼쪽에 단층건물이 일본 제18은행, 그 왼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2층 건물이 제58은행입니다. 이 세 채의 은행은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개항장 풍경. 멀리 산 등성이에 있는 건물이 존스턴 별장입니다. 눈에 딱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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